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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 편지 : 이섬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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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 섬  |  출판사 : 민예원
발행일 : 2001-03-30  |  신국판 (153×225) 239p  |  89-7872-0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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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엮도록 용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빈 깡통일수록 요란한 소리가 난다고 하던가요? 조용하면서도 낮은 목소리를 내고 싶었는데 어떻게 받아 들여질지 궁금합니다. 믿음의 무게로 치자면 평균함량에 미치지 못하여 언제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감히 신앙에세이라는 이름으로 객기를 부리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시선으로 읽어주였으면 합니다. 책의 흐름에 변화를 주고자 이 전에 써 놓았던 10여편의 작품도 함께 묵었습니다. 씨앗주머니에서 포화된 씨앗이 길가나 돌밭, 가시떨기에 뿌리워지지 않고 옥토에 뿌리워져서 많은 결실을 맺듯 책 속의 한 구절이라도 읽는 분이 마음밭에서 열매 맺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외갓집 편지'는 관행상 점감이 있는 표현이라 생각되어 표제로 사용하였습니다.
[본문 104-109쪽 '외갓집 편지'중에서...]

외갓집 편지

초여름 밤 반딧불이

카시아 향기가 진한 오월이다. 갓 대학에 입학한 딸아이의 봄바람처럼 상큼한 뒷모습을 보면서 이십여 년 세월 저편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아픔으로 기억되는 추억이기도 하고 많이 흘러버린 세월 탓인지 그리움의 기억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우리의 신혼 살림은 남편의 직장을 따라 동해안의 작은 어촌 마을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지 않은 비포장도로의 국도 변에 위치해 있었다.
두 시간마다 다니는 시외버스는 한적한 시골동네를 온통 흙먼지로 휘저어 놓았고 파도 소리는 하루 종일 지치지도 않고 철썩이었다. 바다가 있고 아름다운 산이 있고 흙먼지 이는 신작로 길 등... 이러한 것들은 생경한 객지에서 외로움을 느낄 틈을 주지 않았다.
결혼한 지 일년이 되는 오월 말경이었다. 길 건너편 산에서는 진달래의 축제가 끝나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심어 댄 아카시아 꽃은 바다 내음과 함께 온 동네를 향기로 출렁이게 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는 사람의 마음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는가 보다. 첫아이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중대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딸은 엄마를 많이 닮는다는데 우리 엄마는 칠 남매를 병원 한 번 가지 않고 수월하게 나셨다니까 나도 쉽게 낳을 것이다. 그러니 집에서 아이를 낳겠다!' 평소에도 가정의 행복은 건강이 첫째 조건이라고 강조하는 남편은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그러나 오후 다섯시만 되면 막차는 끊어지고 택시를 부르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요, 남편의 전용차는 공무에만 쓰는 것이고 병원에 미리 가서 입원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거기에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이라 병원비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정황으로 결국 남편도 내 고집을 꺾지 못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쉬운 일인지, 어려운 일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나는 친정어머니가 오셨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히 여겨졌다.
정확하게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배가 아파 왔다. 산모가 먹을 미역국을 끓여서 식구들이 다 먹고 또 끓이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 이틀 후에 퇴근 무렵의 남편을 불러다 앉혀놓고 방안에서 별이 반짝반짝 퉁기는 게 보일 만큼 몸부림을 쳐댄 후 첫 딸을 낳았다. 헌데 이게 웬일일까? 아이는 제대로 낳았는데 다음 순서인 후산을 하지 못하였다.
오후 여섯시 반쯤 낳았는데 한 시간이 넘도록 진전이 없었고 당황한 남편은 군의관을 불러왔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아닌 군의관은 진땀을 흘리며 쩔쩔맸다. 결국 아이의 탯줄을 발목에 단단히 묶고 차를 타고도 한 시간 거리인 강릉에 있는 산부인과에 가야 한다고 나서야만 했다. 그때는 이미 열시가 넘어 있었다. 아이를 낳은 후 네 시간 정도가 지났다.
첫 아이를 낳은 산모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면서 온몸을 파카로 감싼 채 찝차에 태워졌다. 남편의 파레 몸을 맡긴 채 비포장 도로의 밤길을 달렸던 그때의 기억은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지금도 또렷하기만 하다.
가로등은커녕 불빛이라고는 전혀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흐릿한 라이트가 제 몫을 못할까봐 바짝 긴장이 되었다. 몸은 추스르지 못했지만 정신은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다 포장되고 잘 닦여졌지만 바다를 끼고 도는 정동진에서 강릉간 도로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흙길인데다가 오르막길에서 내려갈 때는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이 바다만 내려다 보였다. 내가 한 눈이라도 팔면 바다에 풀썩 빠질 것 같은 조바심으로 나는 앞만 쏘아보고 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차창으로 비쳐지는 철 이른 반딧불의 군무는 부드러운 초여름 밤을 참으로 아름답게 장식했다. 순간적이나마 현실을 잊게했다. 사방 팔방으로 화살처럼 쏘아대는 불빛은 내 눈을 정신없이 끌고 다녔다. 어두움이 깊었기에 반딧불의 불빛이 더 곱고 선명했을 것이다. 어릴 적에도 비교적 번잡한 읍 소재지에 살았기 때문인지 이전에도 이후에도 나는 그처럼 아름다운 반딧불을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나이도 어리고 경험이 없는 산모라고 해도 차에 오를 때 당혹해 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에서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보았었다. 또한 내가 다시 이 길을 되돌아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몇 시간 전에 떨어져 나온 아이는 어떡하고 있나 하는 염려도 겹쳐 있었다. "태가 올라붙으면 안 되는데..."하며 말끔을 흐리는 동네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아이의 탯줄은 발목에 잡아매고 있는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절박한 순간이었다. 그 상황에서 차창으로 스며드는 바닷바람의 부드러움과 반딧불의 격정적인 율동을 아름다움으로 느낄 수 있음은 어떤 연유일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염려와 걱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 즉 우리 생명의 주관자가 따로 계심을 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염려가 된 군의관의 차까지 뒤를 따라 왔고 두 대의 찝차가 요란하게 병원 문을 두드렸을 때는 깊은 밤이었다. 자다깬 듯한 중년의 원장은 계속 투덜거렸다. "알만한 사람들이 왜 그리 미련한 짓을 했노? 그런 시골에서 첫 애를 집에서 낳다니!" 수술용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그는 수술대에 누인 나를 오래 염려하게도 하지 않았다.
의사에 의해 문제의 태는 나왔고 그제야 나는 완전한 산모가 될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병원에서 치료가 끝난 후 돌아오는 밤길에서는 반딧불도, 바닷바람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집에서 걱정하고 계시는 어머니와 아이를 빨리 보고 싶은 생각밖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갈 때나 올 때나 똑같이 아름다운 초여름 밤이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배가 고파서 울어대는 아이에게 우유를 타서 먹이시던 어머니는 "살았구나!"하시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경험이 현명한 선생'이라는 말이 있다. 겪어보지 않고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첫 번재 출산을 겁 없이 맞았던 젊은 날의 객기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남들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하는 배짱으로 삶과 죽음을 한바퀴 휘돌아 보았던 철없던 시절이 아련하게 회상된다.
아빠, 엄마, 외할머니 두루두루 놀라게 했던 아이는 오월 출생 덕인지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 5월 31일이 생일이니 초여름 생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제법 숙녀 티를 내며 산들바람 같은 뒷모습으로 어렵게 들어간 대학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피아노 반주자로서, 주일학교 교사로서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도 기특하기만 하다.
이십 년 넘는 세월 저편의 추억이 지금 내 안에 쌓여 있는 크고 작은 염려와 근심 걱정들을 다 몰아내고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는 삶을 살도록 께우쳐 준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다니
베드로전서 5장 7-8절
제1부 다초점 렌즈
교회 풍경
다초점 렌즈
마중물
수지맞았다
절벽과 폭포
인터넷
노란 장미꽃 서른 송이
예빈이
시퍼렇게 살아서 역사하시는
밭농사
운동신경
고성 산불

제2부 외갓집 편지
물안개꽃
외갓집 편지
언덕 위의 하얀 집
향기 선물
충전의 소리
부부학 공부
미감아와 가을비
초여름 밤 반딧불이
이사
연극 구경
행복한 가출
나그네길

제3부 밀레니엄 송구영신
밀레니엄 송구영신 예배
마음 천국
이름 모를 꽃
더운 바람 찬 바람
감사감사
버리기와 채우기
비전 2020
내 모습 이대로
나를 들어서 높이어 주셨다
나의 시 나의 이름
음식 에세이 그 이후
아버지
바나바 수련원

제4부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가보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삼각구도
아름다운 결산
조개 줍기
송홧가루 흩날리는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
'모래 알갱이가 잇는 풍경'을 읽고
한산 모시골
지난밤 내 꿈에
고난이 유익이라
하늘을 바라봐요
마라도, 마라도
이 섬
93년 문학과 의식으로 신인상 등단 95년 국민일보에서 공모한 국민문학상 이천만원 고료 시부문 당선 시집 「누군가 나를 연다」「향기나는 소리」, 에세이집 「보통사람들의 진수성찬」「90년대 동인」「시와 함께 동인」으로 활동, 사화집으로 「초록빛 의자를 펴놓고」「빛의 성」「한국시 35인선」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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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외갓집 편지 : 이섬 에세이
저자이 섬
출판사민예원
크기신국판 (153×225)
쪽수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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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200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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